Thursday, June 21, 2012

6.25전쟁 기념일에 돌아보는 한반도의 슬픈 역사

(글/ Dr. Leonid Petrov 시드니대 교수; 번역/정리: 김혜선 기자)

6월 25일은 한국전쟁 (1950-1953)이 시작됐던 슬픈 날로,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통일을 위한 냉전과 갈등은 제3차 세계대전의 기미까지도 보이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6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한과 북한 사이에 평화조약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한반도는 주변국들의 자국 방어 위한 key place?!

심지어는 다시 전쟁이 재개될 가능성까지도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데 문제의 요점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있다. 중국, 일본, 러시아가 들어있는 동아시아 지도를 보면 한국이 그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는 항상 주변의 대륙들과 북태평양 사이의 섬들에서 이민자들의 이동, 무역의 통로, 그리고 문화적 파도를 전파하는 다리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한국은 고대의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문화적인 통로가 돼왔으며 13세기에는 동쪽으로 그 세력을 넓혀오던 몽고의 군사력 확장을 종결 짓게 한 장소가 됐다.

16세기에는 아시아를 향한 일본의 세력확장을 도왔던 스프링 보드 역할을 하게 됐고 그 후 19세기에는 궁극적으로 가장 뜨겁고 오래 지속되는 냉전의 프론티어가 됐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한반도 주변국가들의 정책결정자들과 전략자들은 한국을 잠재적인 적으로부터 자신의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중요한 지역적 가치가 있는 key place로 여겼다.

그러한 이유로 주변국들과의 힘든 관계는 한국의 숙명이 됐다. 심지어는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정치적 사건들은 언제나 주변국들의 관심과 신속한 반응을 끌어왔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은 매우 풍부하고 극적인 정치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 왕조는 그들의 제국에 한국을 포함시키려 했지만 현대적인 측면에서 보안조약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했다. 대륙의 영향력을 일본열도에 확장하려면 먼저 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그리고 중국과 일본 사이의 샌드위치 

임진왜란 (1592년-1598년)은 아시아의 가장 큰 전쟁이었으며 국제적인 갈등과 미래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최초의 한국전쟁’이었다. 전쟁은 중국을 정복하고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야심 찬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무사 토요토미  히데요시에의해 시작됐고 불행히도 한국은 중국을 정복하기 위한 가장 빠른 통로가 됐다.

한국이 일본군의 통로를 거저 열어주지 않음으로써 히데요시는 한국을 약탈하고 괴롭히는 대상국으로 삼았다. 명나라는 한국과 손을 잡고 히데요시의 중국을 향한 행진을 차단했다. 명나라와 조선의 연합군대는 결국 한반도에서 일본군을 밀어내기는 했지만 중국은 종종 한국에 그 보상을 요구해왔다.

계속되는 국내 개혁과 부진한 행정부는 제국주의의 국가들에게는 쉬운 목표물이 됐다. 청일전쟁(1894년-1895년)과 노일전쟁(1904년-1905년)을 시작하는 일본은 계속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전쟁들에서 일본은 한국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었다. 한국은 이미 중국에 세력을 확장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던 일본에 외교적으로 통제능력을 잃었다.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된 한국은 일본제국 확장을 위해 경제적, 군사적으로 필요한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일본, 북한 인정하고 경제무역제재 해제해야 

한국의 지식인들은 일본의 문화말살정책을 상대로 계속 투쟁했고 이후 35년동안 만주와 중국에서조차 일본군에 저항하는 투쟁은 계속됐다. 그러나 1945년 8월 일본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했다. 소련과 미국은 준비가 돼있지 않던 한국을 두 임시영역으로 나눠 맡게 되었다. 그때는 냉전으로 알려진 새로운 글로벌 갈등이 이미 진행 중에 있었으며 임시로 나뉘어졌던 한국은 끝내 통합되지 못했다.

두적대국가 – 대한민국 (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는 그렇게 1948년에 세워졌다. 그 후 소련과 미국이 한국을 떠난 즉시 새로운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됐다.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한국전쟁’은 20개국의 연합군이 전쟁에 참여했고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북한, 중국, 유엔군 사령부 대표들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적절한 평화조약조차 없이 적절치 못한 휴전협정조약이 체결됐다.

일본과 한국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확고한 동맹관계가 돼 미국과 강력하게 손을 잡고 있다. 1990년 초반, 공산주의의 공식적인 붕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원조와 안보보장으로 북한은 유지돼오고 있었지만 그들은 한국과 외교와 무역관계를 설립했다.

이제는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인정하고 경제무역제재조치를 해제해야 할 시간이 됐다. 단단히 얽힌 동맹국의 낡은 시스템은 21세기를 다극화 세계로 만들고 한국을 영원한 분단상태로 가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다. 한국이 그러한 동맹국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단단히 얽혀있던 낡은 시스템을 털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평화와 안정의 시대가 찾아오게 될 것이다.
--
www.koreatown.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