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26, 2012

김정은 시대가 열리고 있다… 다음은?

글/ Dr. Leonid Petrov (북한연구가•시드니대 교수) 번역/정리: 김혜선 기자

북한의 권력계승은 완벽했다. 7개월 전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의 막내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막내아들로 가는 권력계승의 길이 불안했을까 그는 막내아들 김정은을 위해 든든한 바람막이와 지침대로 서열 높은 계급에 완전한 그의 사람들을 임명했다. 어쨌든 권력계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계획대로 마쳐졌으며 바퀴는 잘 굴러가고 있다.

리용호 총참모장 제거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6개월 동안 운전석에 앉아 바퀴 굴리는 방법을 익혀왔다. 이제 그는 스스로 누구의 도움 없이도 완벽하게 북한이라는 자동차의 핸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충분히 자신의 성숙함도 믿는다. 혼자 힘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는 그의 군사적 멘토였던 리용호(북한 총참모장)와 충돌했다. 리용호 총참모장은 모든 걸 다 빼앗겼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개국자이며 영원한 주석인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 시대로부터 군부대 장성의 길을 걸어왔던 69세의 노련한 군 장성은 이렇게 제거되었다. 소식통들은 그의 사격 명령으로 20명~30명의 사람들이 희생된 게 경질의 이유였다고 전했다.

왜 어린 지휘자는 그의 정신적 스승을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방법으로 제거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리용호를 제거하는 것은 그의 할아버지 대로부터 내려오는 오랜 전통의 끈을 자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선로동당 제1비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조선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의 순으로 서열의 계단을 오르던 김정은은 이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원수가 됐다. 그는 이제 그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같은 영광스러운 서열의 자리에 올라 앉았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리용호 총참모장을 제거하기 일주일 전 문화공연을 관람했다. 문화공연 분위기는 지금까지의 공연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미지 메이킹 위해 노력 중

새로 선보인 ‘모란봉’ 음악밴드는 멤버들 모두가 여자들이었다. 짧은 스커트, 유행하는 커트머리스타일, 아니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멤버들을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지명했다는 것이다. 월트디즈니의 미키와 미니 마우스, 서양 만화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마오 복장을 한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를 맞이하고 있었다.

또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문화공연장에 수수께끼의 여인을 동반했다. 한 때는 ‘보천보전자악단’의 솔로리스트였고 현재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아내가 된 리솔주였다.

세련된 서양 스타일의 옷차림과 헤어 스타일 그리고 공연을 관람하던 그녀의 자세들은 그녀 옆에 앉아있던 배불뚝이 북한 최고지도자보다 더 세상 일에 밝은 듯 한 냄새를 풍겼다.

현재의 김정은 제1위원장은 공공을 위한 이미지 메이킹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완벽한 지위, 군대의 최고지휘자가 된 그는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아직은 성숙한 한 남자가 아닌 여전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막내아들로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마오 복장과 짧은 머리, 그의 할아버지와 같은 외모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을 완벽한 보수주의자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은 외국에서 유학했던 신세대답게 현대적이다.

역사 배신하고 개혁에 앞장서진 못할 터

그런 그의 어깨에는 많은 질문들이 올려져 있다. 할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그는 과연 누구인가? 2천 3백만 그의 국민들을 배불리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인가? 평화와 전쟁, 그는 과연 무엇을 선호할까? 등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원수가 된 김정은 제1위원장 앞에는 할아버지, 아버지시대로부터 내려오던 많은 주민들과의 약속들이 이제는 시행 되기를 기다리며 놓여 있다.

남한과의 관계에서는 남한의 현 보수 정부에서 예전의 ‘햇볕정책’을 재개 해줄 온건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아무런 기대도, 아무런 정책도 취할 수 없는 입장이다.

또한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워싱턴 DC와 평양간의 대화는 재개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에 그렇게 큰 기대를 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경제개혁을 하지 못하고 정치개혁을 처녀 못 하는 김정은은 역사의 희생자로 보인다.

모든 개혁이 단번에 일어날 수는 없다. 아주 작은 변화이지만 ‘김정은 시대’의 조선중앙TV방송국에서는 월트디즈니의 미키와 미니 마우스들이 계속해서 춤을 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이 개혁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의 65년 세월 안에는 너무도 많은 거짓들과 너무도 잔혹한 일들이 역사와 함께 남겨져 있다.

막내아들 김정은은 절대로 북한의 역사를 배신하고 개혁에 앞장서지 못할 것이다. 개혁은 김씨 왕조의 몰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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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ly 15, 2012

나의 1999년 북한 여행기: 발코니의 닭 그리고 욕조 속의 돼지…

(글/ Dr. Leonid Petrov 시드니대 교수; 번역/정리: 김혜선)

북한 주민들이 혹독한 가난과 기근에 시달리고 있으며 심지어 아사하고 있다는 소문으로 북한의 경제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소문이 진실일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면 직접 북한을 여행하고 느껴보는 건 어떨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불완전한 공산주의 정신’과 연결돼 있는 북한의 놀라운 현실을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짧은 여행에 비싼 경비를 지출하는 것쯤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

여행 스케줄 변경 불가능, 취소는 가능

여행을 준비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입국비자를 받기 위해 국제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역매니저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나는 단기 유럽 여행을 해야 했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북한 최고지도자 생일에 참석하겠다는 내 고집스러운 결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 천 가지 이유를 대며 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북한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는 결국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내 북한 방문에 동의했다. ‘북한 방문 후 북한에 관해 좋지 않은 이야기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에서의 여행 동안 모든 계획들은 사전에 논의되고 승인 받는다. 그렇게 결정된 여행 스케줄의 변경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취소는 가능하다. 북한의 여행자들은 숙박 시설을 선택하는데 있어 선택의 폭이 무척 넓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기와 더운 물이 나오지 않는 아주 싼 가격대의 호텔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모든 시설을 다 갖춘 고급스러운 호텔에 아주 비싼 숙박비를 지불하고 머물러야 할 것인지 때로 그 선택은 고통스럽기까지도 하다.

후자를 선택한다면 훨씬 더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호텔에 머물면서 호주에 있는 친척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 수도 있지만 1분의 통화요금은 엄청나게 비쌌다. 두 명의 통역 가이드는 언제나 나를 따라 다녔다. 내가 우울한 기분이 들어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어디든 상관없이 늘 나를 따라 다녔다.

외국에서 온 여행객들에게는 최고의 교통수단이 제공된다. 베이징과 평양간 초 고속 열차 안의 침대 칸, 테이블 위에 놓여진 미네랄 워터, 식당칸의 벽에 걸려있는 최고지도자 사진들은 나를 러시아 스탈린 시대 영화의 한 장면 속의 엑스트라처럼 느껴지게도 했다.

화려하고 웅장한 박물관 매우 인상적

평양에 도착을 했을 때 연료 (굶주린 나라의 실제적인 보물과도 같은) 탱크를 가득 채운 벤츠와 볼보, 그리고 닛산의 신형차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탈 수 있었다. 리무진을 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리무진이 동아시아 전체 중에서 가장 넓은 도로를 달리는 유일한 차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해도 놀라지 않아야 한다.

오랫동안 강력한 북한의 주 에너지 공급원이 돼온 중국과 러시아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복당하고 그들의 기름과 전력라인을 꺼버렸을 때 북한의 공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모든 산업은 멈췄고 한 무리의 노동자들은 캔버라에서처럼 떼를 지어 자전거를 타고 출근 했다. ‘환경보호관점’에서 북한의 노동자정책은 감탄으로밖에는 묘사될 수 없었다.

평양을 방문한다면, 최고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화려하고 웅장한 김일성 박물관을 방문하는 특별한 기회를 꼭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김일성, 그리고 그의 아들 김정일 또 그의 아들 김정은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미래의 그 아들까지 북한의 혁명전통의 왕조를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이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전쟁의 역사가 있는 승리의 애국전쟁기념관은 북한이 한국전쟁의 범인이며 악의 정체라는 것을 말해주듯 설계돼 있었다. 중앙역사박물관은 한국 역사가 세계에서 가장 진보돼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단군의 무덤은 특별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김일성은 북한의 연구학자와 고고학자들의 지침대로 한국의 신화가 됐던 최초의 왕의 골격을 출토했다. 5011년 전 한국인들의 조상인 단군의 유적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한가지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북한 주민들이 그들이 키우는 동물이나 애완동물을 대하는 태도였다. 생계의 어려움은 강제로 도심의 아파트에서도 가축 및 가금류를 키우도록 명령돼 있었다.

개는 고급 민속 레스토랑에서 요리되고…

농촌지역뿐만 아니고 도심에서도 염소와 닭 그리고 돼지는 가장 일반적으로 길러지는 동물이었다. 마을을 산책할 때에도 북한 주민들은 그들이 키우는 염소가 피곤하지 않도록 팔로 안고 다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고 염소는 담배를 먹고 도심의 주민들은 발코니에 많은 수의 닭들을 키우고 있었다.

일부 부유층의 사람들은 욕조에 돼지를 키우고 있었지만 평양을 방문했던 외국 관광객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에게 특별한 귀여움을 받고 있는 개는 평양의 고급 민속 레스토랑에서 요리되고 있었다.

북한을 여행하는 동안 특별히 행복했던 시간이 두 번 있었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건너게 됐을 때 북한에 입국할 수 있도록 입국허가서를 받았던 일과 여행을 마치고 여권을 돌려받게 돼 안전하게 북한을 떠 날 수 있었던 일이었다.

흥미로운 일은 흔히 ‘자본주의국가’로 불리는 서방국가로부터의 여행객들 중 호주에서의 여행객이 가장 많았다는 것이었다. 1975년 호주는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1997년에서 1998년까지 다섯 명의 북한 유학생들은 ANU에서 ‘자본주의 경제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1999년 5월 북한으로부터의 공식방문자들이 캔버라를 방문했다. 국제적으로 링크된 외교관계를 개선하고 미래에 관한 몇 가지 인도적 원조를 구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태국에서 북한의 인사들은 호주의 동료들에게 공식적으로 접근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간다면 그 언젠가 캔버라 거리에 북한으로부터 온 여행객들로 가득하게 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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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this text in English here... "CHICKENS ON THE BALCONIES, PIGS IN THE BATH TU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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